끝이없는 복권의 인기, 누가 발명했나?

복권의 역사 유래 발명

복권에 당첨되는 꿈은 시대에 걸쳐 인류 역사의 필수적 요소였습니다. 정치가, 철학자, 황제 그리고 복권 당첨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복권은 누가, 왜 발명했을까요? 어떤 역사적 인물이 복권으로 가장 많은 이윤을 남겼으며,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복권의 시초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복권의 역사를 알아보세요.

◈ 우리나라 복권의 기원 –  

조선 후기 유행했던 산통계(算筒契)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름이나 숫자 등을 적은 알을 통에 넣어 흔든 뒤 밖으로 빠져나온 알에 따라 당첨을 결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광복 이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행된 복권은 1947년 12월에 나온 ‘올림픽 후원권’입니다. 이듬해 제14회 런던 올림픽 참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장당 100원에 140만 장을 발행했고, 1등 당첨금은 100만 원으로 총 21명이 우리나라 1호 복권 당첨금을 타갔습니다.

이후 복권은 가난한 정부가 경제 개발을 위한 자금이 필요할 때 수시로 발행됐습니다. 1949년 이재민 구호자금을 위해 발행된 후생복표가 대표적입니다. 1950년에는 재정자금을 만들기 위해 애국복권이 등장했고 산업박람회 복표(1962년), 무역박람회 복표(1968년) 등 특정 행사를 지원하기 위한 복권이 뒤를 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정기적으로 꾸준히 발행되는 복권은 1969년 9월 한국주택은행이 발행한 주택복권이 도입되면서 등장했습니다. 당시 한국주택은행은 무주택 군경 유가족과 국가유공자, 베트남전쟁 파병 장병들의 주택 마련을 위해 주택복권을 발매했습니다. 주택복권은 월 1회 50만 장씩 장당 100원으로 처음에는 서울에서만 판매됐습니다. 서울의 집값이 약 200만 원이었던 1970년대 1등 당첨금 300만 원의 주택복권은 지금의 ‘로또복권’이나 ‘연금복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1990년대에는 동전으로 긁어 그 자리에서 바로 당첨 여부를 확인하는 즉석복권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대전국제무역박람회 개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1990년 9월부터 3년간 발행된 엑스포복권이 첫 즉석복권이다. 체육복권, 기술복권, 복지복권 등이 그 뒤를 이으면서 1995년 전체 복권시장의 66%를 즉석복권이 차지했습니다.

복권의 인기가 높아지자 각종 복권기관이 난립하는 가운데 판매도 되지 않고 곧바로 폐기되는 복권도 나타났습니다. 2000년대 초까지 사라진 복권만 체육복권(1990년) 기술복권(1993년) 복지복권(1994년) 기업복권(1995년) 자치복권(1995년) 관광복권(1995년) 녹색복권(1999년) 플러스복권(2001년) 엔젤복권(2001년) 등 9종에 달했습니다.
복권의 종류가 크게 늘자 정부는 구조조정에 나서 2004년 복권 및 복권기금법을 시행해 복권 발행기관을 복권위원회로 단일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복권위원회에서 정식으로 발행중인 복권은 온라인 복권 로또와 결합복권1종, 인쇄복권3종, 전자복권7종 총 12종의 복권이 발행되고 있습니다

◈ 복권의 시초 –

대략 기원전 200년 중국의 한나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늘날 복권이라 할 수 있는 시스템은 줄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인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서양에서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복권이 일반화됐습니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복권 판매와 경품 추첨행사 등을 통해 로마의 복구자금을 마련했고, 폭군으로 유명한 로마 황제 네로도 복권 형태의 추첨행사를 즐겼습니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100년경 중국의 진나라에서 ‘키노’라는 복권게임이 국가적으로 시행됐습니다. 키노를 통해 마련된 기금은 만리장성 건립과 국방비 등에 사용됐습니다.

◈ 고대 로마에서 세금 대체재로 사용된 복권 –

당시 로마는 보수가 절실히 필요했으나 이미 너무 높은 세금이 부과되어서 더 이상의 증세는 민심에 동요가 있을 것이 뻔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는 국고를 증가하면서 동시에 민심을 아우를 수 있는 방법으로 복권을 제안한 첫 인물입니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시대로부터 2천 년이 더 지났지만 정부는 여전히 복권을 도시 계획에 대한 자금책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200년 뒤, 또 다른 로마 황제인 엘라가발루스는 복권에 특히 관심을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노예나 토지 등의 포상과 함께 게임으로 시작된 것이 강제적으로 대중적 복권으로 변모하였고 민중들에게 뿌려졌습니다.
복권과 함께 살아있는 뱀, 말벌, 꿀벌, 죽은 동물, 사형 등이 포상으로 날아오기도 했고 이로 인해 젊은 황제는 18세의 나이에 암살을 당했습니다.

필명으로 알려진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수학자 샤를 마리 드 라 콩다민을 만나 드디어 재정적인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만찬 파티에서 만났는데 라 콩다민이 황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 줄 계획을 제시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사람들이 채권을 사도록 유도하기 위해 복권을 만들었습니다. 각각의 채권 소유자는 채권 가치 1/1,000에 해당하는 금액의 복권을 살 수 있었고, 복권 당첨자는 잭팟에 당첨될 경우 당시로써는 어마어마한 금액인 500,000리브르 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수학에 정통하지 못했습니다. 잭팟은 채권의 금액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고 라 콩다민은 싼 채권을 죄다 사들여 우승 확률을 엄청나게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라 콩다민과 볼테르는 부유한 후원자 그룹과 함께 복권 재단을 만들고 상금을 나눠 가졌습니다. 몇 년에 걸쳐 당첨이 계속되자 정부에서는 이들의 책략을 잡아내어 재판대에 세웠지만, 어떠한 불법 행위도 없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이러한 부의 축적으로 볼테르는 남은 여생을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 복권과 미국 대통령

미국의 헌법 제정자들은 정치적, 개인적 이윤을 위해 복권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조지 워싱턴에서 벤자민 프랭클린까지 자유와 기금이라는 이름으로 복권을 만들었습니다.
1747년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장 세력이 아닌 현금이었습니다. 프랭클린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복권을 통용했고 결과가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뉴욕과 뉴잉글랜드에서는 7개월 동안 팔린 복권이 필라델피아에서는 7주 만에 모두 팔렸습니다. 그는 이 수입으로 필라델피아 수호를 위한 대포를 구매했습니다.대략 30년 후, 조지 워싱턴이 버지니아에 있는 앨러게이니 산을 통과하는 도로를 깔고 버지니아 핫 스프링스의 홈스테드로 알려진 리조트를 짓기 위한 모금 방법으로 복권을 통용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복권을 통한 이 노력은 당시 복권의 수가 증가해 부분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조지 워싱턴이 직접 서명한 복권은 현재 수집 대상품이 되었습니다.
2006년, 가장 최근에 팔린 25개 복권 중 하나의 가격은 $13,500였습니다.
하지만 토머스 제퍼슨보다 복권을 옹호했던 사람은 없습니다. 제퍼슨은 자신의 손자와 함께 빚을 갚기 위해 복권을 통용했습니다.
버지니아 의회를 설득하려는 의도로 쓴 그의 유명한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도덕함과는 거리가 멀며 인간 존재에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제퍼슨은 다행히 그의 이러한 책략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복권은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으며 인생을 좌우할 잭팟에 당첨될 확률이 천문학적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인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얼마나 낮은 확률이며 복권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를 알아보려면 복권 당첨 확률은 실제로 얼마나 될까요? 를 읽어보세요.

7 답글
  1. JerryPauff
    JerryPauff says:

    Знаете ли вы?
    Вместо Плещеева озера Пётр I мог построить потешный флот на озере Неро.
    Первый футбольный трофей после начала пандемии коронавируса был разыгран в Таджикистане.
    Министр социального обеспечения Израиля однажды назвала почти всех выходцев из СССР своими клиентами.
    Сооснователь и глава Социал-демократической партии Великобритании стал бароном.
    100-летний ветеран внёс уникальный вклад в борьбу со смертельной угрозо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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